운보 김기창과 우향 박래현의 집

'운보의 집'은
바보 산수로 유명한 운보 김기창 화백이 아내 우향 박래현 화백과 사별하고
어머니의 고향 청주로 내려가
아내와의 추억을 기리며 여생을 보낸 곳이다.
그가 매일 아내를 그리며 지냈을 것을 생각하니,
혼자임에도 혼자가 아닌듯 살았을 것 같아,
'운보 김기창과 우향 박래현의 집'이라고 제목을 붙여본 것이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서면 운보 선생의 말씀이 새겨져 있는 큰 바위를 만난다.
읽는 사람마다 그 느낌은 다를 수 있겠지만,
7세에 열병으로 청각을 잃었으나 이를 불행이라고 생각지 않았음에도
아내이자 예술동지 우향 선생의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것이 유감스럽다는 말에서
그녀를 향한 그리움이 묻어나오는 것 같아
여러 날을 벼르다가 드디어 방문하게 되어 들떴던 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운보 선생의 집안이 꽤 재력이 있었기에 그의 집도 화려함이 느껴지는 한옥이다.
화려하다해서 궁이나 절에 있는 단청처럼 색이 많이 들어갔다는 말이 아니다.
99칸 대궐같이 큰 집이어서 역시 아니다.
안채와 행랑채로 구성된 아담한 규모이지만
손세공이 많이 들어간 것이 한 눈에도 화려하다는 표현 말고는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라는 말이다.
마당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분재나 수석들, 각종 석공예 작품들 역시 나같은 문외한에게도 꽤 값지게 보였다.

앞마당 한 켠에는 작은 연못과 정자도 있고,


운보 선생께서 작업하던 중간중간 바라봤을 것 같은 마당 곳곳의 장식들도 그 운치를 더했다.

신발을 벗고 안채 내부에 들어가니 이번에는 값진 목공예 작품들이 눈에 띈다.


운보 선생 생전에 사용하시던 작업실도 그대로 남아있다.
운보 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개신교 신자였으나,
아내 우향 선생께서 딸을 임신했을 때,
수녀가 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가 수녀가 되었을 때, 천주교로 전향하게 된다.


그의 신앙은 예수의 생애 장면 장면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해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운보의 집에 가면 '예수의 생애 특별관'이 있으니
한국적으로 해석된 이 작품들을 꼭 한 번 감상해보기를 권한다.
운보의 집 뒷편에는 운보 선생과 우향 선생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운보 미술관이 있다.
청각장애가 있음에도 천재 작가로 유명했던 김기창 화백, 1만원권 세종대왕 작품으로 일반인에게도 친숙한 그에 비해
청각장애인의 아내, 네 자녀의 어머니, 그리고 작가로서 1인 3역을 충실히 수행한 '삼중통역자' 박래현 화백에 대해 많이 알려지지 않아 못내 아쉽다.
집안 일하랴, 자식들 키우랴, 정작 자신의 일은 한 밤중에나 가능해 운보 선생이 붙여준 별명이 부엉이였다던데,
과로로 인하였을 법한 간암으로 너무 아쉽게 생을 마감한 우향 선생
운보 미술관에 와서 그녀의 작품도 함께 감상할 기회를 갖기를 바란다.
나는 개인적으로 운보 선생과 우향 선생이 결혼 후 함께 생활하면서 각자의 작품 스타일이 비슷해지기 시작해,
작품 활동을 할 때는 서로 칸막이를 두고 그림을 그렸다는 말씀을 어머니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는데,
과연 칸막이를 가운데에 두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두 분의 사진을 이곳에서 보고 빙긋이 미소 지은 일이 있었다.
운보 미술관을 넘어 작은 언덕이라고 하면 적당할까 싶은 경사지에 조각공원과 수석공원이 있다.
조각공원의 작품들은 방문할 때마다 다른 것을 보니
후배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한 공간인 것 같다.
우리 예술계의 거목 운보 김기창 선생의 집은 연인끼리, 중고교생을 둔 가족끼리 방문하면 좋겠다 싶은 추천 명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