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여정

너는 기적이야

어린왕자 친구 2020. 11. 25. 22:23
익산 나바위성지. 저 예수성심상이 있는 잔듸밭을 녀석은 좋아한다

익산 나바위성지를 떠올리면 항상 함께 기억나는 가슴 아픈 추억이 있다.
아니, 어쩌면 그 덕분에 우리 사랑을 확인한 특별한 사건이기도 했다.
결과가 좋았기에 이런 이야기도 나오지만...
 
우리집엔 강아지 한 마리가 있다.
강아지..라 하기엔 이제 많이 컸고 나이도 들었지만,
우리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이 녀석은 보더콜리인데
입이 상당히 짧아서 맛있는 거 없으면 아예 굶어버린다.
 
지난 3월31일.
그 날도 맛있는 것 없다고 아침을 굶고, 우리가 익산에 간다니까 쫄랑쫄랑 따라온 녀석
한참 다니고 있는데, 고택이 보여 뭔가 볼거리가 있나 싶어 내렸다.
그런데 고택에 가는 길에 삼겹살 조각도 들어있는 개밥인지, 마치 소풍 나왔다가 남긴 음식 같은 것이 접시에 담겨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여기가 소풍을 나올만한 장소도 아니고, 풀밭에 고기까지 들어간 음식이 접시에 담겨있다...?
동행한 누이에게 "조심해, 쥐약 같다. 강아지 먹지 않게 해"
거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우리가 고택을 구경하는동안 또다른 곳에 있던 그 미끼 접시의 음식에 녀석이 입을 대버렸다!
한 입이나 먹었을까?
입을 댔다 떼는 순간, 우리가 제지를 한다고 했지만, 배고픈 와중의 먹음직스런 고기 냄새에 끌려 이미 삼켰나보다.
잠시 후 녀석이 허겁지겁 풀을 뜯어먹는듯하더니, 괴로운듯 곧 자리에 누워버렸다.
헉헉 숨을 가빠지고...
놀래서 차에 태우고 동물병원을 찾으러 다녔으나,
이곳은 인적마저 드문 시골..
동물병원이 보이지 않았다..
겨우 찾은 사료가게에 물었더니, 도심으로 나가야한단다.
다시 달렸다.
114에 물어 전화하고 겨우 찾아간 동물병원에서
쥐약을 먹은 것 같다고 했다.
먹은 것을 토해야 하는데, 그것도 참고,
수술로 빼내려니 마취약을 투여해도 잠을 쫒아내는듯 참아내는 녀석
오직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소변으로 독성을 내보내기로 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입원실에서 링거를 맞기로 했다.

병원에서 기운없이 겨우 앉아있는 녀석. 코가 말라서 하얗기까지 하다

기운이 없어서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겨우 버티고 있는 녀석이 안쓰럽고
그런 녀석에게 나로선 그 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음이 안타까워서 팔을 뻗어
머리부터 꼬리까지 쭈욱쭈욱 쓸어주면서
"우리 건강하게 오래오래 같이 살자" 했더니,
긴장을 푸는듯 몸을 펴면서 옆으로 눕는다.
다시 계속해서 몸을 쭈욱쭈욱 쓸어주니
요 기특한 아이가 몸을 일으켜 케이지 창살에 몸을 기대면서 나의 눈을 간절한 눈으로 쳐다본다.
마치 '나 사랑해요? 나 사랑하지요? 나 꼭 살아낼게요!'라고 외치는듯 했다.
나는 지금도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내게도 녀석의 의지가 전달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그래, 다 나았네. 우리 건강하게 오래오래 같이 살자"하면서
계속해서 몸을 쭈욱쭈욱 쓸어줬다.
녀석은 기운이 딸리는듯 다시 몸을 내려 누웠지만, 상태는 나아진 것 같았다.
수의사 선생님이 내 말소리를 들으셨는지 '나았다고? 그럴리가'하는 표정으로 상태를 보러오셨다.
그리고 이제 시간이 흘러 퇴근시간이 가까이 되니
아까 내원하자마자 실시한 검사결과를 보여주시면서 급성췌장염 판정과 함께 간수치 검사결과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위급한 상황을 넘겼다고 확신할 수도 없는데다, 다시 장거리를 달려가야 하기에 수의사 선생님의 걱정이 컸다.
그러나 어쩌랴, 이곳은 야간진료를 하지도 않고, 우리도 언제까지나 여기에 있을 수는 없는 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바위성지에 들렀다.
신선한 공기라도 쐬라고 차 문을 열어줬더니
이제껏 기운없이 겨우 앉아있던 녀석이 잔듸밭을 팔짝팔짝 뛰는 것이 아닌가?
마치 우리 보고 '뭐해, 어서 와!"하는듯 뒤돌아 보더니
이제는 성지 경내를 신나게 달린다.
"우리 아가 다 나았네, 이제 다 나았네!" 우리는 놀라움과 함께 너무 기뻤다.
그렇게 달리다가 한순간 기운이 없어서 픽! 쓰러진다
(나중에 보니 이 때 턱을 바닥에 심하게 부딪쳤는지 상처가 나서 피까지 났다)
그제야 깨달았다.
녀석은 우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은듯 그렇게 달렸다는 것을.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사랑스러웠는지...
이후 우리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고,
다음날 인근 동물병원에 가서 약처방도 받았다.
여기 선생님 말씀이 동물이 쥐약을 먹으면 적혈구가 터져서 살 수가 없다고 한다.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적혈구가 파괴 되어버리는 그 생사를 오갔던 상황을 이겨내고
녀석은 이제 깽동깽동 잘 지낸다.
내가 경험한 하나의 기적같은 일
너는 내게 기적이야!
사랑한다